눈, 눈. 눈!
20080542 무학과 우성경
시나리오
등장인물 : 백설(여주인공), 태자(남주인공), 장이(친구),
배경 : XX대학교 캠퍼스
시기 : 2월의 어느 겨울날
S#1.
(2월의 어느 추운 날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은 매섭게 바람을 휘몰아친다. 어느덧 해는 서산 너머로 지고 있고, XX대학교 전경이 화면에 잡힌다. 이윽고 시야는 학생회관 3층으로 좁혀진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깨질 듯이 두드려 시끄럽게 울리는 창문을 넘어,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형광등이 켜진 밝은 복도엔 어느 두 청년이 대화를 하고 있다.
복도엔 여러 가지 조잡하게 생긴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다. 시중에서 구할 수는 없는 장치들로, 아마 손수 조립한 듯 보인다. 여러 가지 장치들 중에는 화학 약품 통, 모터 등 알 수 없는 기구들이 많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하트 모양으로 된 전구들이 박혀있는 작은 판이다. 이 장치들을 연결한 수없이 많은 선들을 따라가 본다. 그 중 하나가 두 청년중 하나의 손에 쥐어진 기구에 연결되어 있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
장이 : 그러니깐, 난 여기서 버튼만 누르면 된다, 이거지?
태자 : 그래, 이번 일 잘되면 내가 소개팅 하나 시켜 줄께! 진짜 A급으로. 아무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루한 표정을 짓던 장이는 원망스럽게 태자를 노려본다. 이것을 본 태자는 잠시 말을 멈춘다. 몇 초 후, 장이는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꺼내든다. )
장이 : 일단 네가 나한테 한 10시부터 11시 사이에 전화를 한다 했지?
태자 : 그러면 난 금방 전화를 끊는다. 이게 신호인 거구,
장이 : 그러면 나는 따뜻한 방에서 어여쁜 소녀시대들이랑 편안하게 쉬고 있다가, 우리 위대하신 황태자님을 위해,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해! 이 추운 겨울날에 학생회관으로 와야겠지? 그것도 3층이나!
태자 : 그럼 내 옷 줄게, 좀 구려서 안 입는 거 몇 벌 있어.
장이 : ……. 나 지금 간다?
(장이, 급히 삐진 듯, 스위치를 내려놓고 지퍼를 잠군 후 계단으로 향한다. 태자, 급히 태도를 바꾼 후 친구에게 달려가 사정한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그들을 클로즈업한다.)
태자 : (두 손으로 싹싹 빌며) 야 장난이야 장난. 내가 진짜 너한테 마지막으로 부탁한다니깐? 제발 좀 봐주라, 응?
장이 : 솔직히 내가 너희 커플한테 뭘 더 도와줘야 돼? 소개시켜줬다가, 이리 저리 재줬다가, 왔다, 갔다, 이쪽 사정, 저쪽 사정, 듣고, 말하고, 비밀 지키다가, 밝히다가, 결국에 골인까지 해줬잖아? 솔직히 내가 너한테 페널티킥 준거잖아, 아냐?
태자 : 그래, 내가 진짜 너한텐 너무너무 고마워, 근데, 진짜. 딱, 한 번만 더 도와주라, 응?
장이 : 그것도 내가 웬만하면 도와주거든, 나, 장이, 이래 뵈도 진짜 사나이다. 응? 우정과 사랑 중엔 우정이야 나는. 근데, 이건 뭐 우정으로 도와 줄 게 아니잖아, 아무리 봐도.
태자 : 그게 그런가? 음, 하긴…….
(계단을 내려온 둘은 아무런 말 않은 채 1층 현관으로 나온다. 현관을 나간 장이는 가려는 생각은 아니었던 듯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곤 삐진 표정으로 지으며 태자를 노려보다가, 이윽고 다시 웃는다. 태자, 다행인 듯 따라 웃는다. 현관 위 3층 창문에는 이상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
태자 : (손가락으로 3층을 가리키며) 저기 위에 보이냐? 저걸로 우리 커플 소원 좀 제발 이뤄주라, 응?
장이 : …….
태자 : 아무튼, 진짜 OO과 퀸카 소개시켜 줄게. 걔 얼마 전에 깨졌데, 진짜야. 너 평소에 얼마나 밝히던 애였냐?
장이 : 됐어, 그따위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버린 여자, 나는 쥐뿔도 관심 없거든? 그리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태자 : 그럼…….
장이 : 아무튼, 난 네가 해달라는 이건 해줄 거야. 이건 너의 친구로서 하는 거고. 하지만 난 백설의 친구이기도 하니까 말하는 건데, 너희 사이에 이런 거 하나도 도움 안 된 다구. 중요한건 너의 생각, 너의 감정이라고. 언제까지 맞춰주기만 할건데?
태자 :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근데, 내가 맞춰주기만 하는 건 아냐.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건 더더욱 아니고. 사실 나도 그런 환상이 있긴 한 거라서, 아주 어릴 적부터…….
(태자, 허공을 바라보며 혼자 상상을 하다, 기분이 좋은 듯 미소 짓는다. 그것을 본 장이는, 웃으면서 한숨을 쉰다.)
장이 : 어휴……. 너희 커플도 참 가지가가지 한다. 쯧쯧. 그것 때문에 진도도 못나가고 그게 뭐냐? 손은 잡아 봤어?
태자 : 그런 말 하지 마, 변태 녀석, 우린 순수한 사랑이거든? 플라토닉 러브라고 뭔지는 아냐? 그리고 손이야 당연히……. 백설, 참 따뜻한 여자인 것 같아.
장이 : 진짜냐 그거? 음, 손이 따뜻한 여자는 침대에서도 따뜻하…,
태자 : 그만하라니깐! 아무튼 난 지금 만나러 간다! 좀 있다가 연락 할 테니깐 꼭, 좀 해줘!
장이 : 간다고? 야 잠시만 나 할 말 아직 안 끝…….
(태자, 급히 저쪽 골목길로 사라진다. 현관 문 위 빨간 전자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장이,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방금 태자가 사라진 길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다시 3층 창문을 바라본다.)
장이 : 그런데 이거, 어떻게 만든 거지? 너도 참 대단한 놈이다.
(장이, 회관을 따라 죽 설치된 기계를 둘러다 보며 감탄을 하곤, 이윽고 사라진다. 창문에 설치된 조잡한 기계 장치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여러 가지 조잡한 장치들 가운데, 아까의 그 전구 판이 눈에 띈다. 하트모양의 전구 판을 클로즈 업 해보니, 옆에 2개의 판자가 더 보인다. 'You‘라는 합판 뒤에 ’I'라는 합판이 놓여 있다. 'You' 판은 다른 판자와 달리 약간 더 지저분해보이지만, 눈에는 띈다. 이를 들여다보니, 'You'라는 글씨 앞에 K라는 대문자가 쓰여 있다. 희미한 자국을 보니 아마 쓰인 직 후 지워진 것으로 보인다. Fade Out)
S#2.
(택시 승강장이다. 어느새 여명만이 남아 희미하게 밤하늘을 비추고 있다. 방학이라 그런지, 사람은 없고, 택시 여러 대만 남아 미등을 비추고 있다. 아무도 없는 승강장에 곧 한 명의 남자가 도착한다. 저 앞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던 기사들 중 한명이 택시에 탄다. 태자는 그 택시에 다가간 후, 잠시 무어라 말한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동을 끈다. 태자 클로즈 업. 벤치에 앉은 태자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
태자 : 벌써 6시 10분인데? 아, 추워……. 그때도 이랬었지.
(다시 한 번 미소 짓는 태자. 핸드폰에는 문자 메시지 작성 창이 떠있다. 태자는 무언가 적다 지우고, 또 적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태자 Narration : 맞다. 그때도 이랬었다. 우리의 두 번째 만남 때 말이다. 하지만 우리 둘 다 그때를 처음 본 걸로 정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음 서로 마주쳤을 그 때는,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는 않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건 마주쳤다 라기 에도 애매한 것이, 물론 내 잘못이었기도 하지만……,
(태자가 앉아있는 모습을 클로즈업 한다. 그리곤 다시 하늘을 향하고, 하늘의 색깔이 바뀐다. )
S#3.
(O.L) XX대학교 중앙도서관이다. 형광등이 켜있는 것을 보니 초저녁이다. 바깥은 석양이 어스름하게 지고 있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나무들은 알록달록 단풍이 물들어 있다. 1F 라 쓰인 엘리베이터 앞에 태자가 서있다. 태자가 입는 옷으로 보아, 아마 가을로 한참 접어든 듯하다. 핸드폰을 얼굴에 대고 있어, 아마 전화 중인 것 같다. )
태자 : (전화기에 대고,) 뭐, 소개팅? 음……. 이쁘냐?
핸드폰 : $#@!#...(뭐라고 재잘재잘 한다는 것만 희미하게 들린다.)
태자 : (갑자기 소리가 커진다.) 진짜? 오옷!!! 근데 어느 학교냐?
핸드폰 : …….
(태자, 전화에 열중한 듯 주위를 아랑곳 하지 않는다. 뒤에 사람이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곧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태자는 바로 탄다. 그리곤 거울을 바라보며 전화를 계속한다. 뒤따라 여자 한명이 탄다. 여자는 표정이 상당히 어두운 게, 안 좋은 일이 있는 듯 보인다. 거울을 바라보는 태자 바로 뒤에 있어서, 태자는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태자 : 우리학교? 아 좀 부담되는데. 걔 이름이 뭐냐?
핸드폰 : …….
태자 : 백설? 처음 듣는데, 무슨 백설 공주냐? (웃는다.)
핸드폰 : …….(찰칵)
태자 : 진짜 이뿐건 맞지? 어떤 애인데……. 어? 야, 야!
(태자 핸드폰을 본다. 전파가 잡히지 않는다고 표시되어 있다. 태자 다시 거울을 쳐다보며,)
태자 : 지금이 어느 시댄데, 휴대폰이나 이름이나, 참……. 백설이라, 풋(웃으며 거울에 얼굴을 들이댄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잘생겼니?
(태자, 고개를 숙이며 거울에 얼굴을 들이대자, 뒤에 서있던 여자가 보인다. 여자는 상당히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태자는 심히 당황한다. )
태자 : (다시 고개를 들며 문 앞을 바라본다)…….
그녀 : (찌푸린 표정은 바뀌지 않는다.)…….
태자 :(헛기침을 한다.) 에헴…….
(땡 하는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태자, 급히 나가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급히 나가려는 여자와 부딪힌다.)
태자 : (몸을 뒤로 빼며) 아, 죄송합니다.
그녀 : ……. (잠시 태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바깥으로 나간다.)
(태자, 그녀가 사라진 엘리베이터 바깥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얼빠진 표정을 지은 채 잠시 서 있다가, 문이 닫히려 하자 황급히 버튼을 누르고 나간다. Cut)
S#4
(화면이 다시 S#2의 택시 승강장으로 바뀐다. 태자 얼굴 클로즈업, 동시에 저 멀리 여자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 : 태자야, 많이 기다렸지?
태자 : (일어서서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거기엔 S#3의 그녀가 서있다. ) 딱 15분이네, 너 기억나? 맨 처음에…….
그녀 : 기억나, 그때도 내가 15분 늦게 나갔잖아. 그 땐 원래 소개팅에선 그게 예의라고 해서 그랬던 거구. 암튼 미안…….
태자 : (들은 체 만 체 하며, )몰라, 암튼 택시나 타자, 춥다.
두 남녀, 택시에 탄다. 태자가 먼저 들어가고, 곧 그녀가 따라 들어간다. 이윽고 택시는 출발한다. 택시 뒷좌석에 탄 남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태자는 고개를 창문으로 돌리고, 그녀는 그런 태자를 바라보며 얼굴을 잠시 찌푸린다. 똑같이 그녀도 고개를 반대쪽 창문으로 돌린다. 어색한 둘 사이로, 라디오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라디오 ; 중국에서 건너온 시베리아 기단으로 인해, 오늘 밤도 큰 추위가 예상됩니다. 이 추위는 내일 모레 정도는 되어야 수그러들 것으로 보이지만, 건조한 기후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자, 강원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가뭄으로 인해 지역 농가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올 겨울 단 한 번도 눈이 내리지 않아 일어난 가뭄 피해의 규모는 대략…….
(작아지는 캐스터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태자 클로즈업. 동시에 내레이션이 나온다.)
태자 Narration : 작전 1, 삐진 채 하기 시작이다. 고맙게도 지각까지 한 그녀가 너무 고맙다. 어쨌거나, 생각해보니 우리가 두 번째, 아니 처음으로 만났다고 치는 그날에도 그녀는 지각을 했다. 그것도 15분씩이나. 이제 와서 그건 예의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어쩌면 기다리는 그 15분, 아니 그것도 따지고 보면 30분이다. 아무튼 그 긴 시간 동안 애타는 마음에 난 조금이나마 설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사랑에 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선은 태자의 얼굴에서 창밖으로 향한다. 그리고 Focus out, Fade Out.
S#5
(Fade in) 마찬가지로 택시 승강장이다. 아까와는 달리 택시 승강장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주위에 풍경엔 낙엽이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늦가을인 듯 보인다. 사람들의 복장도 그리 두껍지는 않은, 긴팔이다. 사람들 사이에, 아까와 비슷한 곳에서 태자가 서있다. 머리스타일이 약간 달라, 시간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태자 :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토요일 6시라 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사람들은 계속 지나가고, 특히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 승강장 시계의 분침이 거의 3을 가리킬 때쯤, 저쪽에서 걸어오는 S#3의 엘리베이터에서 본 그 여자가 보인다.)
태자 :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앗! 저 사람은 그때, 그…….
(그녀는 태자를 못 본 듯,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태자도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모르는 체한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녀와 태자만 제자리에 고정된 채 사람들이 지나가는 장면이 Over Lap 된다. 동시에 시계는 3분씩 지나가고, 6시 30분 쯤 되었을 때 멈춘다.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승강장엔 그녀와 태자, 그리고 기사들만이 남아있다.)
태자 :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지친 듯 멈춰서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다 잠시 그녀를 바라본다.) 설마 이 사람이 그 여자는 아니겠지?
(태자가 잠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도 태자 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이를 본 태자는 급히 시선을 돌린다. 그녀는 잠시 멈춰 서 있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태자 : 그나저나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태자,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핸드폰을 조작한다. 그리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핸드폰 : 뚜, 뚜, 뚜…….
태자 : 어라? 통화 중이네?
(잠시 핸드폰을 닫고 뒤를 본다. 전화 중인 그녀는, 상당히 인상을 쓰고 있다. 이내 전화를 끊는다. 이윽고 태자의 전화기가 울린다.)
태자 : (핸드폰을 받는다) 어 나다. 그 백설이란 사람 왜 안나오냐? 벌써 30분이나 기다렸어…….
핸드폰 : …….(재잘재잘 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태자 : (큰 소리로) 뭐? 나왔다고? 그럴 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잠시 그녀를 본다. 이내 전화기에 대고,) 에이,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핸드폰 : …….
(갑자기 그녀가 태자에게로 다가간다. 전화에 열중인 태자는 그녀가 오는지도 모른다. 태자 바로 뒤까지 다가간 그녀는 태자의 등을 두드린다)
태자 :……. 아무리 봐도 없다니깐?
그녀 : (태자를 두드리며) 저기요.
태자 : (화들짝 놀라며) 네!?
그녀 : 혹시, 장이 친구신가요?…….
(태자. 핸드폰을 급히 닫는다. 그리곤 당황한 듯)
태자 : 네, 맞습니다만. 혹시 그쪽이 한 백설 씨?
그녀 : 네, 한 백설이에요. 그럼 그 쪽이…….
(태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다. 이어지는 태자의 내레이션.)
태자 Narration : 그래, 이것이 첫 만남이었다.하지만 첫 만남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게, 사실 첫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니었으니깐. 에헴.(헛기침을 하며)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어색한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남녀, 택시에 탄다. 아까와는 다르게 여자가 먼저 타고, 남자가 그 뒤에 탄다. cut)
S#6.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예약을 안 해놓았는지, 현관에서 지배인을 기다리고 있는 둘.)
태자 Narration: 어긋난 건 어쩌면 처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에서, 승강장에서. 그리고 이곳에서도. 무심한 지배인은, 그 30분을 기다리지 못해서 예약을 취소했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현관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나 하게 되었다. 다행히 어긋난 실을 되돌리긴 했고, 어쩌면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게 된 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아직 이때는 어색하던 시간이었다. 물론 택시에서 우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아, 저녁 먹었냐고 묻기는 했지만.
(지배인을 따라 출입문 안쪽의 의자에 앉아서 기다린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태자가 살며시 말을 건넨다.)
태자 : 저, 초면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저 아시나요?
백설 :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다. 두 남녀는 같은 곳에 앉아, 다른 곳을 바라본다. 다시 태자의 Narration)
태자 Narration: 사실, 저녁만 먹고 헤어지려고 했다. 애초에 이 소개팅은 망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잘 모르기는 개뿔, 아까 당황하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실망에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여자도 나와 마찬가지로 주선자를 어떻게 살며시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겠지, 하면서 낙담했었고, 그래서 어쩌면 내 본모습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사실 소개팅이란, 가식과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만남이 아니던가? 난 이번 소개팅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다 버리려고 했다. 애초에 잘 보일 이유가 없었으니깐, 결과를 뻔히 알고 있었으니깐 말이다. 이왕 망한 거, 드라마나 찍어보자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태자 : 아닌데, 우리 구면이에요. 기억나실 텐데요?
백설 : 네? 글쎄…….
태자 : 혹시 얼마 전에 도서관 가신 적 없으세요?
백설 : 네, 당연히 있죠. 그거야 며칠 전에 중간고사가 끝났으니깐…….
태자 : 아, 맞다. 아무튼, 혹시 엘리베이터 타고 다니시지 않으셨어요?
백설 : (무언가 기억나는 눈빛이다) 아……. 그거요?
태자 : 엘리베이터에서요, 언젠가 혼자 거울 보고 ‘누가 제일 잘생겼냐’ 하면서 묻던 남자 있었죠?
백설 :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웃는다.) 아 그 미친거 같던 사람? 덕분에 시험기간에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근데, 왜요?
태자 : 그러니깐…….
(이어지는 백설과 태자의 대화. 목소리는 음악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서로 웃으면서 대화하는데, 아까의 어색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태자 Narration : 덕분에 문제 하나는 잘 넘어갔다. 이제 남은 문제는,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장이와 전화 하던걸 들었냐는 것이었다. 만약에 들었다면, 무슨 생각으로 소개팅 나온 것일까? 하는 것이 궁금했었다. 그 문제는 저녁 먹던 도중 해결이 되었는데…….
(어느새 테이블에 앉게 된 두 남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계속 웃고 있다. )
백설 : 호호호……. 그러니깐 장이랑은 별로 안 친한 거잖아요?
태자 : 아, 그게 또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고요, 남자들의 우정이란 보이는 것과 달라서, 으로 친하고 다정해 보이면 그건 결코 친한 게 아니에요. 겉으로 지지고 볶고 물과 기름처럼 전혀 안 어울리는 듯이 보이는 친구, 그런데도 같이 다니는 그런 친구가 진짜 친한 친구죠.
백설 : 흠, 이해 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서로 이쁘면 이쁘다, 못생겨도 이쁘다 해주거든요. 그게 친구사이 예의고 우정이고 그런 건데…….
태자 : 그러니깐, 여자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니까요?
(말하고 난 후, 싸늘해진 분위기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태자, 스파게티 먹는 속도가 빨라진다. 백설, 물을 잠시 마신 후, )
백설 : ……. 그래요? 전 이해가 되네요.
태자 : 네? 뭐가 이해가 되는데요?
백설 : 남자 말이에요. 그러니깐 장이를 생각해보면, 나보고 하는 소리가 살 좀 빼라, 피부 관리 좀 해라. 그만 좀 재고 현실을 직시해라 등등. 진짜 저를 친한 친구로 생각하니깐 그런 거잖아요?
태자 : 그건 아마 장이가 나쁜 놈이라서…….
백설 : (소리 내어 웃는다)풋……. 사람은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는데요,
태자 : 그거야 그렇죠!……. (스파게티 감던 손이 멈춘다.)네?
백설 : (미소 지으며) 아무튼, 그리고 오랜만 이었어요. 그런 말,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 듣는 말이었거든요.
태자 : (포크를 내려놓은 후, 물을 마신다.) 무슨 말요?
백설 :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백설 공주 말이에요. 고등학교 때 별명이었는데, 대학 와서 까 지 들을 줄은 몰랐거든요.
태자 : (물을 마시다가 기침을 한다)푸웁…….
(방금 기침 하느라 옷에 물이 좀 튀었다. 그렇게 많이 튀지는 않았지만, 이를 본 백설은 웃는다. 태자, 어쩔 줄 몰라 하며 책상을 정리한다. 이어지는 태자의 내레이션.)
태자 Narration : 그 뒤 대화는 기억나지가 않는다. 여러 말들을 주고받았지만, 내 머릿속은 하얗게 물들었고, 아무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딱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그녀가 계속 미소 짓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날 비웃는 거라 생각했지만. 예정대로 나는 밥만 먹은 후 학교로 돌아오려 했는데.
(현관을 나온 남녀, 남자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여자는 핸드백을 확인한다. 추운 밤공기에 입김이 나왔다. )
백설 : (먼저 말을 건다) 제가 나올 줄은 모르셨죠?
태자 : 네, 장이가 기대하란 말만 했거든요. 게다가 엘리베이터 사건은 장이가 모를 텐데…….
백설 : 왜 몰라요, 내가 말해줬죠. 그것도 아주 화내면서.
태자 : 네?……. 그럼 왜, 나오신 건데요?
백설 :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글쎄요, 우리 이야기나 더 할까요?
태자 : (놀란 표정을 지으며) 뭐……. 네, 문제는 없습니다만.(말꼬리를 흐린다)
백설 : 왜요, 돈 때문에 그래요? 남자가 쪼잔 하기는. 밥은 그쪽이 샀으니깐 커피 값은 내가 낼게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자, 가요!
(태자, 걸어가는 백설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이내 따라간다. 이어지는 태자의 내레이션)
태자 Narration : 이때부터 예상은 했었다. 혹시나 이 여자랑 사귀게 된다면, 거의 가능성은 없고, 전혀 없다 해도 무방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사귀게 된다면, 좀 피곤하겠다고. 혹은 내가 휘둘려 살겠다고. 결국 내 예상은 맞았고, 그래서 지금 이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뒤따라가던 태자 또한 인파에 휩쓸려 보이지 않는다. Fade out.)
S#7
(어느 카페다. 유명 체인점이 아닌,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카페다.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서, 백설과 태자가 앉아 있는 테이블 뒤로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창가에 앉아있는 백설과 태자. 창밖으론 희미한 미등이 붉게 빛나고 있다. )
백설 : 카페, 자주 안 오죠?
태자 : 네, 남자들끼리 이런데 올 일은 없으니까요.
백설 : 아까 에스프레소 시키려고 했잖아요, 사실 그거 뭔지 몰랐죠?
태자 : (마시던 커피를 채 못 마시고 내려논다.)…….
백설 : 내가 아메리카노로 바꿔서 망정이지, 그 원액을 어떻게 마시려고 했데?…….호호(재밌다 는 듯이 웃는다)
태자 : 그러니깐…….
백설 : 아무튼, 백설공주 이야기 있잖아요? 거기서 왜 백설공주가 죽잖아요?
태자 : 네, 사과 먹다가 목에 걸려서 죽지 않나요?
백설 : 사실 그게 죽은 건 아니고 사과가 걸린 거지만, 아무튼 왕자가 키스를 해서 백설공주가 다시 깨어나잖아요?
태자 : 그러죠, 그런데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백설 : 근데 백설공주가 왜 깨어났는지 아세요?
태자 : (빤히 쳐다본다)…….
백설 : 무슨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마법에 걸린 것도 아니고. 키스 때문에 죽은 사람이 살아난 거 아니에요? 궁금하지 않아요?
태자 : 글쎄요…….
백설 : 좀 있다 헤어지기 전까지 숙제에요, 못 맞추면 알아서 하시던가.
태자 :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네?
백설 : 그냥, 옛날이야기 좋아하시는 거 같아서 물어봤어요. 백설 공주라니, 제 어릴 적 별명도 불러주시고, 그것도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
태자 : 그땐 정말이지 죄송하고요, 그럼 커피 값도 제가 낼게요.
백설 :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카페는 선불이거든요? 게다가 그쪽하고 또 마실 일은 없을 것 같네요.
(태자, 얼굴 표정이 심히 일그러진다, 계속 웃고 있는 백설. 배경음악이 끝나고, 화면 전환)
S#8.
(다시 캠퍼스다. 여기 저기 걸어 다니는 커플들이 두셋 정도 보인다. 그중에 하나가 클로즈업되는데, 백설과 태자이다. 걸으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백설은 여전히 미소짓고 있다.)
백설 : 백설공주라고 풋 하며 웃으시던 게 참 어이없었죠. 저는. 게다가 그 거울패러디는 왜하셨던 건데요?
태자 : 왜 백설공주 하면 당연히 왕비가 생각나서……. 대표적인 게 거울아 거울아 묻는 거잖아요. 그리고 제가 좀 거울 보는 거 좋아하기도 해서.
백설 : 어머!(까르르 하며 밝게 웃는다.) 그 얼굴에요?
태자 : 남잔 정말이지, 거울을 보면 자기가 잘생겼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아무도 없을 때지만.
백설 : 그런데 그땐 제가 뒤에 있었잖아요?
태자 : 그때 정말 몰랐죠. 제가 원래 전화하고 있으면 바깥에 집중을 못하는 경향이 있어서…….
백설 : 하긴, 아까 처음에 택시 승강장에서도 그러시긴 하셨네요.
태자 : …….(우울한 표정)
(대화 하는 도중, 어떤 건물 앞으로 도착한다. 이어지는 태자의 내레이션)
태자 Narration : 이때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약간 아쉬웠다. 아직도 이 여자가 왜 나온 건지는 듣지 못했으니깐. 어쩌면 그냥 괘씸해서 밥이나 얻어먹자 하는 마음에 나왔을 수도 있다고, 만약 그런 거라면 돈 뜯긴 거라고 생각하다보니 아쉬웠나보다. 그런 마음에 용기내서 말했던 것이,
태자 : 결국, 오늘 왜 나오신 건데요?
백설 : (시치미 떼며) 글쎄요, 제가 먼저 물었던 것 답해주시면, 그때 말해 드릴게요.
태자 : (잠시 생각하다가) 왜 백설공주가 깨어났는지, 이거요?
백설 : 네, 그리고 제가 왜 나온 건지는, 장이한테 물어보시는 게 더 나을 것 같구요.
태자 : …….
백설 : 아무튼 오늘 즐거웠어요, 황태자씨~
태자 : 네, 저도. 덕분에 커피 잘 마셨어요. 그치만…….(무언가 말하려고 한다)
백설 : (태자의 말을 못 들은 듯, 재빨리 머리를 숙이며) 그럼 안녕히 가세요.
(서로 인사를 하며 뒤돌아 헤어진다. 이때 태자 클로즈업. 태자, 무언걸 골똘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뒤돌며 말한다.)
태자 : 저기, 그 이유요! 알 것 같기도 한데…….
(태자, 뒤돌았으나 백설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다시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는 태자, Fade out)
S#9
(태자의 기숙사 방이다. 룸메이트는 장이, 신나게 노래를 듣고 있다. 어느 여가수의 뮤직 비디오다. 이 와중에 태자는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어느 만화를 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백설 공주’다. 태자, 신나게 노래를 듣고 있던 장이의 헤드폰을 벗기며,)
태자 : 야, 노래 좀 그만 듣고 이리 좀 와봐.
장이 : (짜증내며) 왜?
태자 : 너, 왜 백설공주가 다시 살아나는지 알겠냐? 여기 좀 봐봐. 일단, 남자가 키스를 한단 말이야?
장이 : 응, 근데?
태자 : 봐봐, 공주가 왜 눈을 뜨냐고, 키스 한번에. 보니깐 그렇게 찐하지도 않는데…….
장이 : (꼴불견 보듯이) 당연히 옛날이야기니깐 그렇지, 이건 만화잖아. 드라마라고 드라마! 아니면 너무 키스를 심하게 해서 목구멍에 있던 게 올라왔다던가. 우웩. 아무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얘네 들 좀 봐봐. 이번 소녀시대 신곡인데, 진짜 예쁘지 않냐?
(장이, 다시 헤드폰을 끼고 컴퓨터에 열중한다, 이런 장이를 바라보며 태자는 한숨 섞인 표정을 짓는다. 다시 백설공주 만화를 보는 태자. 만화가 클로즈업된다. 만화에서 왕자가 키스를 하자 백설공주가 깨어난다. 다시 화면 전환)
S#10.
(백설의 방이다. 정돈되고 핑크색이 감도는 책상 분위기는 여자의 책상이라는 것을 가늠케 한다. 아까 태자의 그것과 비슷한 구조로 지어진 방이다. 백설의 컴퓨터엔 메신저가 켜져 있고, 백설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 배경화면이 백설공주가 있는 화면이다. 갑자기 백설공주의 휴대폰이 울리고,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 창 insert.)
백설 : 응, 누구지?
핸드폰 : (저장이 안 된 번호) 「백설씨 맞으세요? 저 태자입니다만, 그때 물어보신 거 관련해서요^^」
백설 : 번호도 안 물어봤으면서, 웃기다. (웃으며 답장한다.)
「네, 그런데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_-?」
(문자를 보낸 후 바로 웹서핑을 한다. 곧이어 울리는 핸드폰)
핸드폰 : 「장이한테 물어봤어요.ㅎㅎ 그나저나 대충 제가 내린 결론을 말하자면요,」
백설 : 아, 그거. 설마 계속 신경 썼던 거야?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네, 궁금했었는데 잘됐네요. 그래서 뭔데요?」
핸드폰 : 「좀 길어서, 만나도 이야기해도 될까요?」
백설 : (웃으면서) 뭐야, 애프터잖아.
(백설,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 화면에 잡힌다.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메신저를 끈다. 화면엔 아무것도 없고 배경화면만이 남아 있다. 여전히 배경화면은 백설공주의 그림이다. 이를 유심히 바라보던 백설은 답장을 하기 시작한다. Fade out.)
S#12
(이번엔 찻집이다. 백설,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이번엔 태자가 웃고 있다.)
태자 : 혹시 녹차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세요?
백설 : 글쎄요, 녹차 나뭇잎으로 만들겠죠?
태자 : 영어로는 뭐라고 하게요?
백설 : 글쎄요, 그린 티?
태자 : 그럼 홍차는?
백설 : (당황한 듯이) 레드 티?
태자 : …….홍차는 어떻게 만들까요?
백설 : 홍차 나뭇잎으로 만들겠죠, (짜증난 듯이)지금 저 놀리시는 거에요?
(태자, 혼자 웃는다. 백설, 무안한 표정을 짓는다.)
태자 : 아쉽지만 다 틀렸어요. 뭐 녹차 경우는 봐줄 수 있지만……. 일단 녹차나 홍차나 모두 같은 ‘찻잎’으로 만들어요. 다만 발효 되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죠. 여기서는 홍차가 발효된 경우. 그리고 녹차의 경우는 말 그대로 번역해서 그린 티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홍차의 경우 동양과 서양에서 이름이 다르답니다. 동양에선 찻물이 붉다고 홍차라고 하지만, 서양에선 발효된 찻잎이 검다고 해서 블랙 티라고 하거든요.
백설 : (못마땅한 듯이) 그래서요?
태자 : 제가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 따위는 구별 못하는 촌놈이지만, 적어도 차는 제가 한수 위인 것 같다고요.
백설 : …….(실소 짓는다)
태자 : 게다가 차는 역사가 기원전부터 시작해서 몇 천 년이나 되었죠. 저 옛날 삼국시대 때 유비가 찻잎장수 이었던 건 아시죠?
백설 : …….(고개를 끄덕인다)
태자 : 커피는, 제가 문외한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아직 천년 채 안된 걸로 알고 있거든요?
백설 : (웃으면서)되게 해박하시네요? 보기와는 다르게…….
태자 : (차를 마시다가 ‘풉’하고 잠시 컵을 내려논다. 헛기침을 하고)제가 보이는 게 뭐 어때서요?
백설 : 글쎄요, 그쪽이 더 잘 아시겠죠? 아무튼, 백설공주 이야기나 해보세요. 바쁜데 불러놓고는 갑자기 ‘차’이야기나 하고, 저 한가한 사람 아니거든요?
태자 : 사실 그게, 그러니깐 잘 모르겠지만요.
백설 : 그래서 지금 사람 불러 놓고, 잘 모르…….
태자 : (백설의 말을 끊고)눈이 내려서가 아닐까요?
백설 :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태자 : 만화를 보니깐, 키스를 할 때 눈이 내리더라고요.
백설 : 눈이랑 백설 공주? 그게 키스랑은 무슨 상관인데요?
태자 : 백설 공주가 태어날 때 피부가 하얗고 눈처럼 고와서라는 백설이란 이름이 지어졌잖아요. 또 그녀가 태어날 때는 하늘에서 하얗고 고운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스노우 화이트라고 하지요. 사실 영어 그대로 해석하면 ‘설백’이라고 해야 맞는데, 해석해보면 하얀 눈이라는 뜻이니깐 백설이 맞는 표현이죠. 아무튼 눈이 내릴 때, 그 눈과 비슷한 존재가 백설공주라고 하면…….
백설 : 그럼 왕자가 키스를 해서라기 보단, 눈이 내렸으니깐 다시 살아났다, 마치 눈이 올 때 백설공주가 태어난 것처럼. 이 뜻이에요?
태자 : 어쩌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됐네요.
백설 : …….
(백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이를 본 태자는 무안해 하다가, 다시 말을 시작한다.)
태자 : 아무튼, 어제 공부 하나도 못하고 백설 공주만 몇 번이고 돌려봤어요. 다 큰 나이에, 그쪽 때문에 뭐하는 건지 참……. 이제 그쪽 차례에요. 소개팅 왜 나오셨는지.
백설 : 아직은 말해 줄 수 없어요. 그리고 그쪽 답변이 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태자 : 왜 그렇죠? 전 완벽하다고 생각하는데…….
백설 : 그럼 그 장면에 왜 키스 장면을 집어넣었겠어요?
태자 : (머뭇거리면서)……. 그건 아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백설 : (까르르 웃는다) 꿈과 희망? 좋은 이유이긴 하네요. 아무튼, 다시 한 번 알아봐 주세요. 별 이상한 대답에 제 시간 이렇게 낭비하셨으니깐, 꼭 알아봐 주셔야 되요.
태자 : 네…….
(백설, 계속 차를 마신다. 가끔씩 태자를 보며 미소 짓는다. 태자, 벌써 찻잔을 비워서 할 것이 없고, 그냥 멀뚱멀뚱 주위를 둘러볼 뿐이다. 차 마시는 백설을 빤히 쳐다보는 태자. 이어지는 태자의 내레이션)
태자 Narration : 이상하겠지만,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가지고 계속 만나곤 했다. 내가 여러 번 답을 생각해서 말하곤 했지만, 그때마다 변변히 퇴짜 맞곤 했다.
(화면 전환. 여러 번 만남의 장소가 바뀐다. 테이블엔 둘이 앉아 있고, 남자는 계속 자기의 의견을 말한다. 그럴 때 마다 변변히 고개를 젓는 백설의 모습. 백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입고 나오는 옷도 점점 예뻐지는 것이 보인다. 경쾌한 음악 삽입)
태자 Narration: 아무튼 이러한 만남들과, 장이가 우리 사이에서 노력한 덕분에 우린 좀 더 깊은 사이가 되었다. 뭐 그런 사이 있잖은가? 사귀는 사이? 여자친구, 남자친구 사이 말이다.
(더 밝고 경쾌한 음악 삽입. 배경 음악도 커지고 템포도 빨라진다. 백설과 태자의 데이트 장면이 삽입된다. 상점, 동물원, 백화점, 식당 등 여러 곳에서 보이는 백설과 태자의 다정한 모습.)
S#13.
(노래가 끝나고, 어느 분위기 좋은 공원 벤치에 백설과 태자가 앉아있다. 밤이라 어둑어둑 한데, 저 멀리에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인다. 성탄절인 듯, 백설과 태자 또한 빨간 산타 아이템을 갖추고 있다. 이어지는 내레이션)
태자 Narration : 겨울이 시작될 때 쯤 시작된 우리의 사랑은, 크리스마스이브 때까지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 내 고민이 시작되었다.
백설 : (다정하게) 태자야, 내가 좋아?
태자 : 응, 너는?
백설 : 음, 글쎄! 인연이긴 한 것 같아.
태자 : 어떻게?
백설 : 난 백설이잖아, 넌 태자고. 황태자와 백설 공주. 어때? 좀 어울리잖아!
태자 : 그러고 보니깐 장이도 성이 남이니깐, 무슨 난쟁이 같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
백설 : 어, 백설 공주? 나보고 공주라 해주는 거야?
태자 : 응!
태자 Narration : 좀 미안하지만, 우리는 좀 닭살커플이었다. 그렇게 우린 데이트를 하다가, 어느덧 헤어지게 되었다. 그 때…….
백설 : 오늘 너무 좋았어!
태자 : 나도. 좀 춥긴 했지만.
백설 : 진짜? 난 안 추웠는데. 아마도…….
태자 : 나 때문이라고?
백설 : 응, 너 어떻게 알았어!
태자 : 그거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두 사람. 손을 잡고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고요한 분위기 가운데,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이윽고 눈이 가까워지는데, 잠시 후 백설이 얼굴을 돌린다. 어색해진 분위기 가운데, 둘은 다시 걷는다. 백설이 먼저 이야기한다.)
백설 : 신기하지? 이번 겨울엔 도무지 눈이 안 오잖아.
태자 : 응…….
백설 : 나,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태자 : (백설을 지그시 바라본다) 뭔데?
백설 : 눈이 내리는 날이야.
태자 : (백설의 눈을 바라본다)…….
백설 :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거야, 눈이 오는 날에.
태자 : …….
백설 : 눈이 오는 날에,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앉아서, 또 눈을 감는 거야.
태자 : 그리고?
백설 : 그리고, 서로 동시에 ‘눈’ 이라고 길게 말하는 거야.
태자 : 눈~.(입술이 모은 채 툭 내민다.)
백설 : (태자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태자 : (느리고, 애정이 넘친 말투로) 눈이 내리는 날에, 사랑하는 사람이랑, 눈을 감고, 서로 ‘눈’이라 말한다!
(태자가 ‘눈’이라고 말하자, 톡 튀어나오는 입술. 이어서 태자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를 본 백설, 웃는다.)
태자 :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무슨 뜻인지 알겠다.
백설 : (얼굴이 붉어진 채 미소 짓는다.)…….
태자 : ‘눈’, ‘눈’, ‘눈’, ‘눈,’ …….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이윽고 백설의 기숙사 앞에 도착한다.)
태자 : 잘 자!
백설 : 응!
태자 : 아차, 잠시만.
백설 : 응?
(태자, 백설에게 다가간다.)
태자 : 오늘은 눈이 안 내리니깐, 눈 감을 수도 없겠네. 그러니까 일단 나 혼자, 눈!
(태자, 백설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백설, 멍한 표정, 황홀한 표정, 아쉬운 표정이 교차한다.)
태자 : 나 먼저 들어간다? 그럼 내일 봐!
백설 : (아무런 말 않은 채 서있다)…….
(저 멀리 걸어가는 태자. 백설은 뒤에서 태자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O.L)
S#14.
(S#4의 택시에서 다시 O.L.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태자와 그녀의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이윽고 이어지는 태자의 내레이션.)
태자 Narration : 어찌 됐건 분명한 것은, 백설은 눈이 내릴 때 키스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눈, 눈, 눈. 그녀가 말한 세 가지 키스의 조건은, 그 후 여러 번 내 기회를 앗아갔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인지 뭐인지, 올해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눈이 안 내린다고 여러 번 뉴스에서 난리를 피운지라, 올 겨울 내 그녀와의 입맞춤은 불가능했다. 어느덧 2월인데, 어느덧 겨울이 끝나는데, 이럴 수는 없겠다 싶어서 생각해낸 것이 지금의 이 프로젝트다.
(이후로 부터는 태자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화면은 태자의 내레이션에 따라 이동.
태자 Narration : 일단 작전 1, 삐진 채 하기는 성공이다. 이로써 백설이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겠지? 여자가 남자에게 미안함을 느낄 때, 그 미안함을 사랑으로만 바꿀 수 있다면 그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그리고 작전 2. 쿨한 척 하기 시작이다.
(바뀌는 화면, 길거리를 걷는다.)
태자 : 춥지?
백설 : 응. 많이 춥다.
태자 : 그럼,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
백설 : 어?
(태자, 백설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백설, 걱정하는 얼굴이다. 태자, 골목으로 걸은 뒤 떡볶이 집들을 여럿 지나친다. 그러다가 갑자기 도로로 나온 태자는, 어느 고급 레스토랑으로 백설을 데려간다.)
태자 : 내가 설마 너한테 저녁으로 떡볶이 사주고 그러겠어?
백설 : …….(다행이란 표정을 짓는다. 감동한 눈빛)
(서로 자리에 앉아, 이야기 한다. 서로 미소 지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태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고, 이어지는 내레이션.)
태자 Narration : 작전 2도 성공이다. 쿨한 척하기. 사실 작전 3인 감동시키기를 시작할 시간이지만, 이미 감동도 한 듯하다. 바로 작전 4로 넘어가자.
S#15
(화면 전환. 주변이 어둡고 큰 소리가 들린다. 영화관이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태자 Narration : 작전 4, 감정이입하기다. 멜로 영화에 키스신 없는 영화가 어디 있는가? 평이 좋은, 따끈따끈한 로맨스영화를 본다. 분명 백설, 감정 이입이 돼 있을 것이다.
(화면 전환, 영화관 바깥이다. 백설, 팝콘을 들고, 훌쩍이며 울고 있다. 태자, 콜라를 건네주며,)
태자 : 영화 진짜 감동적이다.
백설 : (울면서) 응……. 특히 남주인공이 대신 죽으려고 할 때 너무 멋있었어. 나도 그런 남자친구 있었으면…….(태자를 흘낏 쳐다본다.)
태자 : (흠칫) 아, 그래도 좀 비현실적이기도 하더라. 아무튼, 시간이 좀 늦었네. 학교로 돌아갈까?
백설 : (훌쩍인다) 응, 그러자.
(택시를 불러 타는 둘. 다시 태자를 클로즈업 한다. 이어지는 내레이션)
태자 Narration : 그리고 마지막 단계다. 장이한테 문자는 보내놨으니, 이제 학생회관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제발 제시간에 와야 할 텐데.
S#16.
(화면 전환, 어느새 학생 회관이다. 아까의 기계가 있던 곳에, 장이가 도착한다. 버튼이 있는 스위치를 찾아 손에 쥔 후, 장치들을 살펴본다.)
장이 : 눈을 만들어 내는 기계라. 제설기? 이 녀석 기술은 좋긴 한데, 이것도 일종의 사기란 말이지…….
(창문을 바라보는 장이. 바깥엔 가로등 불빛과 그 아래가 희미하게 보인다. 저 멀리 두 남녀의 윤곽이 작게 보인다.)
장이 : 어? 쟤네들인가?……. 맞네. 그럼 적당히 기다렸다가 이 버튼을 누르면 된다 이거지? 좋아. 태자야, 이 형님을 믿어라!(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화면 전환, 다시 태자와 백설이 보인다. 태자, 걷다가 학생회관 옆 벤치에 앉는다. 화면 상단에 3층에 설치된 장치의 일부분이 보이만, 백설은 눈치 채지 못한다. 이어지는 태자의 내레이션. 기계를 만드는 과정과 모습이 화면으로 나온다.)
태자 Narration : 장이에겐, 우리가 앉은 지 5분 정도 지나면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바로 눈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제설기의 원리를 응용해서 엉성하지만 만들어 봤다. 명색이 기계공학과 전공인 나인데, 눈 하나 만들지 못해서 어찌 사나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재료는 여러 실험실에서 쓰다가 버리는 통과 부품들을 조합해 깎고 재구성하는 일들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마침 겨울이라 졸업하는 연구원생들이 많아, 거의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방학엔 남는 게 시간이라, 데이트 하는 시간을 빼고 계속 매달리니 보름 남짓하여 거의 완성했다. 시험가동 때는 완벽하게 되었으니, 이제 눈만 내리는 것을 기다리면 된다.
(태자, 백설의 눈을 응시하다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
태자 : 어렸을 때, 여러 이야기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백설 공주 이야기였어.
백설 : 왜?
태자 : 글쎄, 백설 공주 이야기는 다른 공주 이야기들이랑은 확실히 다른 부분이 많거든.
백설 : 음, 어떤 것들인데?
태자 : 가령 공주이야기들은, 사실 공주가 예쁜 것 보단 공주 자체로써의 품위가 많이 다뤄진단 말이야?
백설 : …….
태자 :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보면, 공주가 조신하지 못해서 물레에 찔리게 되잖아? 백조왕자에서는 오랫동안 한마디도 않은 채 꾹 참고 물레를 짜는, 지조 있는 공주이야기. 그리고 개구리 왕자에서는, 아무리 천한 것도 사랑으로 대하는 착한 공주이야기. 그렇게 옛날이야기들은 공주의 성격이나 품위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백설 : 그런데?
태자 : 백설 공주는, 단지 세상에서 젤 예쁘단 이유 하나만으로 왕비의 질투를 받지. 그런데 너무 예뻐서 자객도 공주를 죽이지 못하고. 숲속의 동물들도 건드리지 않고, 난쟁이들은 처음 본 처녀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하잖아? 결국 왕비가 죽이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너무 예뻐서 왕자가 키스까지 해주잖아? 그래서 다시 되살아나는 거구.
백설 : 그래, 결국 왜 되살아나는지는 모르겠지만…….
태자 :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엔, 아마도 ‘백설 공주는 예쁘다’가 이야기의 교훈인 것 같아. 그리고 거기서 공주를 빼도 되는 것 같고(쑥스러운지 고개를 돌린다.)
백설 : (감동한 눈빛, 발그레 미소 짓는다.)헤헤, 고마워!
태자 Narration : 이쯤에서 눈이 내려야 하는데…….
(태자의 내레이션이 끝난 후, 잠시 두 남녀는 미소 지은 채 서로를 응시한다.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는 가운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3층에서 들린 듯하다.)
태자 : 설마…….(태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학생회관 현관으로 뛰어간다.)
백설 : 태자야, 어디가? 태자야!
(떠나버린 태자, 그리고 그를 부르는 백설. 태자는 사라지고, 백설 또한 앉아 있다가 학생회관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Fade out)
S#17
(병원이다. 응급 병동 문 앞에 서있는 태자와 백설. 백설의 표정을 보니 화난 듯하다. 태자는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못한다. 백설, 이야기를 시작한다)
백설 : 그게 뭐야 그러니깐, 너희 둘 다 결국 날 속이려고 했던 거잖아?
태자 : 아니 장이 잘못은 없어. 그리고 그게…….
백설 : 그것도 나름의 이벤트였으면 좋았을 텐데, 속은 엉큼해가지곤! 깜박하면 이 늑대한테 속을 뻔 했네. 너 맨날 그런 생각 가지고 있었어?
태자 : 그런건 절대 아닌데……. 미안, 백설아.
백설 : 아무튼, 이제 어떡할 거야? 장이 크게 다쳤을 수도 있잖아.
태자 : 음……. 일단 의사 선생님께서 검사 결과 말해준다고 하셨어, 기다려 보자고.
(병동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온다. 태자에게로 다가와,)
의사 : 자네가 환자분 친구인가?
태자 : 네.
의사 : 남자 애가 간이 콩알만 한 듯 해. 무슨 공포영화라도 본건가?
태자 : 네? 아, 작은 폭발 사고가 있긴 했는데요.
의사 : 폭발? 아무런 외상은 없던데, 음……. 아무튼 놀라서 기절한 것뿐이라네. 곧 있으면 일어날 걸세. 가끔씩 공포영화를 보고 온 환자들이 이런 증세를 나타내곤 하지. 그래서 물어본 것이네.
태자 : (안도하며) 휴, 다행이네요,
의사 : 어쨌거나 쓰러진 이상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네만, 입원은 필요 없을 것 같네. 물론 응급 병동은 그렇게 한가한 곳이 아니라, 자리 내줄 수도 없고. 지금 깨어났으니, 한번 가보게나.
태자, 백설 : 네! 고맙습니다,
(태자, 병동을 열고 들어간다, 백설이 뒤따라. 장이, 태자는 본체만체 백설에게만 인사한다)
장이 : 썰아, 너만 온 거냐?
백설 : 어?……아, 응.
장이 : 근데 왜 썩은 남자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다. 음…….
태자 : 미안하다, 장이야.
장이 : 응? 무슨 소리가 ‘엥엥’하구 울리는데.
백설 : (까르르 웃는다) 장이, 넌 여전 하구나.
장이 : 그래, 비록 어떤 루저 공돌이가 만든 폭발물에 실신하긴 했지만…….
태자 : 진짜 미안한데, 몰랐다니깐? 실험실에선 잘만 되던 거라…….
장이 : (태자를 노려본다) 그러셨겠죠?
태자 : 겨울이라 노즐이 얼어버렸나 봐. 그것까진 예상 못했는데. 미안해…….
장이 : 아무튼 됐고, 난 친구의 사랑을 위해 몸까지 던졌는데, 그 친구는 뭘 해줄 수 있으려나…….
태자 : 소개팅! 그 여자애 그냥 해주마. 비록 네가 아무것도 못해주긴 했지만…….
장이 : 뭐? 이 녀석이 보자보자 하니깐. 야, 버튼 눌렀으면 됐지. 키스는 네가 못한 거잖아……. (잠시 정적이 흐른다, 백설을 바라보며) 앗!
백설 : (어이없다는 듯이) 너희 둘 다, 참. 가지가지 하는 구나.
태자, 장이 : 미안…….
백설 : 아무튼, 의사선생님에 퇴원해도 된다 했으니깐 빨리 가자, 먼저 나가있을게,
(나가는 백설, 태자 장이 서로 째려보다가)
태자 : 그래도, 내 여친 센스 넘치지? 너 옷 갈아입으라고 먼저 나가있잖아! 내가 여친 하나는 잘 골랐다니깐.
장이 : 글쎄, 그냥 너 보기 싫어서 나간 것 같은데? 그리고 골라 준 건 네가 아닌 나 아니냐? 말은 똑바로 해야지
태자 : 아, 설마…….
(황급히 문밖으로 나가는 태자. 장이, 웃으며 일어나 옷 갈아입는다. Fade out)
S#18.
(학교에 내린 세 사람. 남자 둘 여자 하나로 갈라져서 헤어지려한다.)
백설 :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 너는 장이 부축 제대로 시켜줘야 돼!
태자 : 이런 말짱한 애를 왜 내가,(백설이 째려본다) 알았어.
장이 : 고맙다, 썰아! 아무튼 잘 들어가~
백설 : 응! 장이야 잘 들어가~
(장이와 태자만 남는다. 둘의 대화)
장이 : 그나저나 이제 어떡해, 너희?
태자 : 글쎄, 어떡하나……. 보기보다 실망 많이 한 것 같던데, 나한텐 작별 인사도 안 해주더라.
장이 : 내가 너라면!
태자 : 어쩌려고?
장이 : 너에게로 달려가리.
태자 : 무슨 뜻이야?
장이 : 여자는 감성의 동물, 남자는 본성의 동물이란 말이 있지. 가서, 네 진심을 보여주는 거야. 지금 빨리!
태자 : 너도 알다시피, 내 마음은 나도 모르는 걸.
장이 : 글쎄, 이것만 보여줘. 네가 원하는 건 키스가 아닌 사랑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걸 키스로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키스를 하고 싶었다고.
태자 : 무슨 말이야?
장이 : 두 개는 다른 거야. 키스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사람이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키스를 하는 사람이 있어.
태자 : 그럴 듯한 궤변인데?
장이 : 흠, 넌 설이가 좋냐, 설이의 입술이 좋냐?
태자 : 당연히 설이지, 그걸 말이라고 해?
장이 : 그래, 그럼 가서 말해. 사실 너가 좋아서, 너가 원하는 걸 한 거라고. 난 간다, 말짱하니깐. 그리고 잠 와서 혼자 갈게. 아무튼 너 빨리 달리라니깐?
태자 : 그래도…….
장이 : 눈, 눈, 눈. 그거 원래 누가 원하던 거였냐?
태자 : 눈, 눈……. (잠시 생각하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이)눈! 그래!
(태자, 달려간다. 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선다.)
S# 19. Finale
(백설 클로즈업. 고민을 가득 품은 채 걷는 모습이 보인다. 뿌옇게 붉은 겨울 밤하늘이 외로움을 더하는 듯이 보인다. 터벅터벅 걷는 백설, 이어지는 내레이션. 내레이션과 함께 여러 가지 장면이 스친다.)
백설 Narration : 기억난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마치 미친 사람마냥, 남의 별명을 만들고 거울을 보며 이상한 짓을 하던. 무엇보다 장이한테 화가나, 당장 전화해버렸다. 그러자 장이가 하는 말. 좋게 생각하라는 그의 말. 덕분에 김칫국 먼저 마실 일은 없지 않냐고. 혼자서 이상형을 맞추고, 거기에 못 미치는 사람이 나오면 혼자 실망하는 일반 소개팅과는 다르지 않냐고, 무엇보다 친구로서 자기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그의 말에, 그리고 남자의 자존심은 그 무엇보다도 강한 걸 알기에 난 소개팅을 수락했다.
(다시 보이는 백설. 그리고 그녀 주위를 지나가는 커플. 서로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백설, 자신의 손을 보고, 잠시 사색을 한 뒤 주머니에 두 손을 넣는다. 다시 이어지는 내레이션. 화면이 바뀐다.)
백설 Narration : 따뜻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었다. 가식적인 만남에서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함. 정 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처음에 생겼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극복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백설 공주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보니, 보기보다 괜찮은 남자 인 것 같았다. 어렸을 때, 백설 공주라는 별명 때문에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래서 남자애들이랑 싸우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남자애들을 극도로 싫어한 덕분에 여중, 여고를 택했고, 그 덕분에 휴대폰엔 아버지, 오빠 두 명의 남자가 전부였다. 대학오니 외롭다는 게 절실하게 느껴지고, 주위엔 남자친구 있는 여자애들이 자랑하는 게 어찌나도눈꼴시던지. 그래서 선택했던 게 여러 번의 소개팅이다. 애프터도 몇 번 받고 , 몇 명은 여러 번 만나기도 했지만, 마음의 벽이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사람은 달랐다. 처음부터, 마음의 벽 따윈 허물어져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가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잠시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을 상기한다) 하지만……. 그래, 결국 내 착각이다. 이 사람도 다를 거라는 기대는, 내가 한 것, 나의 착각이다.
(그리고 고개 숙이며, 기숙사 현관에 도착하는 백설. 문을 여는 찰나, 어디선가 백설을 부르는 소리가 난다.)
목소리 : (희미하다) 백설아~ 백설아!
백설 :……. (뒤를 돌아본다. 멀리서 태자가 달려오고 있다.)
태자 : 백설아. 헥,헥…….(숨을 헐떡인다.)
백설 : 응? 무슨 일이야.
태자 : 한, 백, 설!
백설 : (빤히 쳐다본다.)…….
태자 : 너 내 애인이지?
백설 : …….
태자 : 어서 대답해봐.
백설 : 응…….
태자 : 미안, 백설아. 나, 착각하고 있었어.
백설 : 뭐를?
태자 : 눈, 눈, 눈, 말이야.
백설 : 그거? 별거 아닌데…….
태자 : 별거 아니긴,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니깐?
백설 : 무슨 뜻이야?
태자 : 네가 원하는 게 다른 것인 줄 알았어. 사랑이 아닌.
백설 : …….
태자 : 남자들은 착각을 하곤 해. 이 여자도 원하고 있구나. 하지만, 서로 원하는 건 달랐던 거야. 남자가 원하는 건 과정이지만, 그리고 나도 그것을 목적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라고, 네가 원하던 건.
백설 : …….
태자 : 내가 원하던 건, 눈, 눈, 눈.(마지막 눈을 작게 말한다.), 너가 원하던 건 눈, 눈, 눈! (마지막 눈을 크게 말한다.)자, 따라 해봐. 먼저, 눈을 감아.
백설 : (빤히 쳐다본다)
태자 : 눈을 감아보라니깐?
백설 : (마지못해 눈을 감는다)
태자 : 그리고…….
(태자, 백설에게 입맞춤을 한다. 잠시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이어서 곡이 흐른다.
" E. Sixpence None The Richer - Kiss me" 조용한 기타소리가 울리고, 노래가 시작되면 입술을 뗀다. 조용한 배경음악 사이에)
태자 : 내가 추가할게. ‘눈’을 감고, ‘눈’을 말하고, 난 너의 ‘눈’을 바라볼 거야.
백설 : …….(붉게 물든 볼, 두 눈엔 물이 고인다)
태자 :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 잊고 있었어. 가장 중요한 건데.(잠시 아무 말도 안하다가, 배경음악에 맞춰서) 사랑해, 백설아.
(백설 , 태자 서로 포옹한다. 화면 track-back. 위쪽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축소된다. 이윽고 둘은 가로등 밑의 점으로 된다. 그리고 화면엔 눈발이 잡힌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백설의 Narration)
백설 Narration: 또 착각 해버렸다. 그가 다른 남자와 똑같다고. 물론 다른 남자들과 똑같은 그이 이지만, 나에게만은 다른 남자라는 걸 깜박했다. 아니, 방금 깨달은 것이다.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백설 공주가 잠에서 깨어난 건, 결국 키스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건, 사랑이었다. 왕자와, 난쟁이와, 그리고 그녀의 사랑, 그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을. 어머, 눈이 내린다. (잠시 후) 눈,
태자 Narration: 눈,
백설, 태자 Narration: (함께) 눈이 내린다.
(삽입곡 볼륨이 커진다. Fade Out. 그리고 엔딩 크레딧 삽입, 잠시 후 화면이 전환되면서 학생회관 3층 사진 insert. 장치들은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고, 약품 통엔 얼음이 껴있다. 망가진 기계들 사이에서, 아까의 합판이 보인다. K라고 쓰인 합판은 어두워 그 모양새만 보인다. 그 옆에 하트모양의 전구가 빛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하트모양 합판. 그리고 끝. )
The End